나아가는(문화)

대한제국의 패망 - 1910년 8월 29일

Gijuzzang Dream 2008. 7. 20. 21:28

 

 

 

 

 

 대한제국 패망

 

 

카쓰라 - 태프트 밀약에 나타난 미국 대외정책의 속성

내 힘으로 나를 지킬 수 없을 때 자주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조선이 패망하던 때가 그렇다.

흔히들 미국의 배신이 일본의 조선 강점을 도왔고,

그런 맥락에서 미국은 일제의 조선강점에 공범이라고도 한다.

 

올해로(2005년)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지

100년째가 된다.

일본의 카쓰라(桂太郞) 총리와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William H. Taft, 미국의 27대 대통령)는

1905년 7월 27일 도쿄에서 장시간 비밀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서 양국은 3개항에 합의했다.

“첫째, 미국 내의 친 러시아적 여론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필리핀 군도에 대한 침략의 확실한 전주라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태프트 장관은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유일한 관심은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도 우호적인 국가가 필리핀 군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카쓰라 총리는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침략적 구상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문제에 대한 태프트 장관의 견해가 정확하다는 점을 강력한 어조로 확인했다.

둘째, 카쓰라 공은 극동에서 전반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의 국제정책의 기본적 원칙이라고 표명했다.

그런 사정이므로 상기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최상의, 그리고 현실적으로 유일한 수단은

일본과 미합중국 및 대영제국 정부 간에 이해가 잘 돼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한국 문제와 관련해 카쓰라 공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조선이기 때문에

조선반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전쟁의 논리적 귀결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본에는 절체절명의 문제라고 표명했다.

러일전쟁 후 조선에 문제를 맡겨 둔다면 한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전혀 선견지명 없이

다른 열강들과 협약과 조약을 체결하는 등 과거로 회귀해

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국제적 분규를 재연시킬 것이다.

앞서 지적한 상황에 비춰볼 때, 한국이 종전의 상태에 빠져 일본으로 하여금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부득이 명확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카쓰라 공은 말했다.

이에 태프트 장관은 카쓰라 공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면서 사견임을 전제,

조선이 일본의 동의 없이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일본군이 조선에 대해 확립한 종주권을 현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아시아에서 영구적 평화정책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태프트 장관은 비록 그가 이 문제에 관한 보증을 줄 만한 권위는 갖지 못했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루스벨트 대통령도 같은 의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프트, 일본의 종주권 인정


이와 같은 미·일 합의에 대해 루스벨트 대통령의 7월 31일자 반응은 다음과 같다.


“카쓰라 공과 귀하(태프트)가 나눈 담화는 모든 점에서 절대적으로 정확합니다.

카쓰라공에게 장관이 한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확인하고 동의한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미국의 배신과 미·일의 공모를 우리의 역사책은 왜 가볍게, 아니면 아예 외면하는 것일까?

대외정책에서 미국의 속성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예도 없다.

오늘의 한 · 미 · 일 관계, 우리의 자주론은 1905년을 거울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 이형래(세계역사문화연구소장)

- 경향, 뉴스메이커 625호 [국학이야기]


 

 

 

 ‘합방’ 뜻이나 제대로 알자

 

‘합병 · 병합 · 합방’은 자유재량적 선택의 행위… ‘보호조약’도 ‘늑약’이 맞아



8월 15일로 광복 60주년을 맞는다.

오는(2005년) 29일은

경술(庚戌 1910년) 국치의 95년째 되는 해다.

조선의 국권이 마침내 일본에 강탈된 날이다.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겼다. 늑약에 의한 국권상실은 한민족이 근대 민족통일 국가를 건설한 지 1000여년 만에 최초, 최후의 일이었다.

합병이나 병합이나 합방은 같은 의미다.

두 개 이상의 나라를 하나로 합친다는

사전의 풀이다. 이 말은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자유재량적 선택의 행위다.

 

 

‘재갈 물린다’는 의미의 ‘늑’

 

그렇다면 왜 늑약이라 해야 하는가? 늑(勒)은 ‘재갈 물린다. 강요하다’는 의미다.

‘을사보호조약’이 ‘을사늑약’일 수밖에 없는 것은

조약 조인이 당사자의 자유재량권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이 붕어하기 직전인 1926년 4월 26일

궁내대신 조정구(趙鼎九)에게 구술한 유조(遺詔)에서

한일간의 조약이 얼마나 강제적인 것이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목숨(一命)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하여

조칙(詔勅, 임금의 뜻을 일반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하노니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 일본을 지칭)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 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脅制, 으르대고 억누름)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古今)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
나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한 지가 지금에 17년이라.

종사(宗社)의 죄인이 되고 2000만 민생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이 꺼지지 않는 한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유수(幽囚, 잡아 가둠)에 곤하여 말할 자유가 없이 금일에까지 이르렀으니,

지금 한 병(病)이 심중한 일언(一言)을 하지 않고 죽으면 짐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나 지금 경(卿)에게 위탁하노니 경은 이 조칙을 중외(中外, 국내외)에 선포하여

내가 최애최경(最愛最敬)하는 백성으로 하여금 병합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효연(曉然, 똑똑하고 분명하게)히 알게 하면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과 양국(讓國, 나라를 내 줌)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라.

여러분이여, 노력하여 광복(光復)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冥冥, 어두운 모양, 저승)한 가운데 여러분을 도우리라.”

(조정구에게 조칙을 나리우심(詔付) ‘한국병합의 불법성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재인용)

국가 권력의 최고 권위를 지닌 황제와 신하가 강요와 억압에 의해 늑약된 조약들이다.

때문에 한일간의 모든 조약은 병합이나 합병이 아닌 늑약에 의한 병탄이었다.

친일사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때도 벌써 지났다.

‘어둡고 괴로웠던 깊은 밤’에서 빛을 다시 찾았다. 광복이다.

대명천지에 뭐가 무서워 ‘늑약’을 ‘보호조약’으로,

‘병탄’을 ‘병합’으로 쓰는지 자성할 일이다. 광복 60주년에….
-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장

- 경향, 2005년 8월 24일, 뉴스메이커 638호[국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