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책]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Gijuzzang Dream 2008. 6. 12. 14:42

 

 

 

 

 

 “민족혼 지키는 데 무엇이 아까우랴”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 문화재청/ 눌와
 


1552년 6월, 왜군 제 6진이 전주를 향해 진격했다. 왜적들이 금산 지방까지 밀려들자

당시 전라도 태인에 사는 유생 안의(1529∼1596)와 손홍록(1537∼1610)은

전주사고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이 걱정돼 전주로 달려갔다.

모든 병사들이 전장으로 나간 터라 사고는 무방비 상태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실록을 47개 상자에 담아 정읍의 내장산 깊은 곳으로 옮겼다.

2006년 7월, 인천국제공항에 특별한 화물이 도착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이었다.

1913년 강탈당해 도쿄대학에 보관되다 돌아왔으니 93년 만의 귀향이었다.

종교계 학계 정계 인사들이 2006년 3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결성한 뒤

도쿄대학과 일본대사관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반환을 요청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되찾은 것이다.

1935년, 서울 인사동에서 일본인 골동품상 마에다는 조선 청년의 말 한마디에 사색이 되었다.

"2만원에 사겠소." 당시 서울의 웬만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쌀 한 가마니가 16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입이 벌어질 만도 했다.

이 청년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고 구입품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일본인의 손에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일에 간송은 전 재산을 털었다.

수난의 문화재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는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와 같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긴박하고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도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문화재를 지킨 사례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광화문을 잃으면 조선의 중심을 잃는 것"이라며 조선총독부의 광화문 철거에 반대한

일본인 고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의 사연도 눈물겹다.

독도지킴이 안용복과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상도 빛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간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그 진면목을 세상에 알린 박병선(80)씨,

 

1990년 독일 성 베니딕도회 오티리엔 수도원에서 겸재 정선의 화첩을 우연히 접한 뒤 끈질긴 설득 끝에

2006년 한국행 비행기에 실어 온 선지훈 신부의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100년 만에 귀환한 북관대첩비,

서울 수복작전으로 폐허가 될 뻔한 덕수궁,

일본 호텔에서 처량한 신세로 있다 80년 만에 돌아온 경복궁 자선당 유구

등에 얽힌 비화가 130여 장의 사진 자료와 함께 실렸다.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 등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문화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이 든다.

현재 일본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국외로 약탈당하거나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5000여 점.

문화재청은 청소년들의 문화재 애호의식 함양을 위해 각급 학교에 이 책을 보급할 예정이다.

- 국민일보,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  2008-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