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분청사기

Gijuzzang Dream 2008. 5. 28. 19:24

 

 

 

 

 분청사기

 

 

<분청사기>

회색 태토에 백토를 분장하고 회청색 유약을 시유하여 번조한 것으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인 말이다.

고려말의 퇴락한 상감청자에서 새롭게 변화한 것으로

기본적인 태토와 유약이 고려말 상감청자와 동일하다.

재질과 기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감청자에서 백토의 시문면적만이 넓어졌기 때문에

'분청자(粉靑磁=분을 바른 청자)'라 칭하기도 한다.

백토(백토)를 분장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지역별 개성가 분위기가 표출된다.

 

  

 분청사기 상감 모란문 편병 / 조선 15세기

 

상감 기법은 초기에는 단순한 선상감(線象嵌)이었으나

점차 능숙한 솜씨의 면상감(面象嵌)으로 발전하였다.

연꽃, 버들, 물고기 등을 전면에 큼직하게 배치하여 매우 참신하다.

전라북도 부안군 우동리 가마터에서 비슷한 특징을 가진 도자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분청사기 조화 어문(물고기무늬) 편병 /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철화 모란무늬 편병 / 15세기 후반 - 16세기 초

 

 

 

 

참으로 현대적인 우리 민족자기

 

분청사기는 600년 전 우리 땅에서 일어난 변혁의 시기에 잉태된 산물이다.

500년 동안 이어지던 고려왕조가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멸망당한 것이 1392년.

조선은 불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이전의 우리 역사를 일도양단하여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현실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당연히 사회 전반에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이 일었고,

이를 추스르기 위해 조선왕조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 혁명적인 기간 동안 전통과 혁신의 양분된 기운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점차 조선왕조가 안정을 찾고 성리학적 이념이 확산된다.

 

이런 변혁 속에서 도자기들 역시 역사적 수순에 따라 변화되어 갔다.

즉 조선 초기에는 도자사가 분청사기와 백자로 양분되어 한동안 힘겨루기 같은 양상이 벌어지다가

갈수록 백자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분청사기도 전반적으로 백자화의 과정을 걷는다.

결국 조선시대의 요업이 백자 위주로 바뀌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분청사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고려 말기에 퇴락한 청자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때까지 강진(康津)과 부안(扶安)에 집중되었던 고려청자의 생산이

지방 각지에서 소규모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료가 없어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 도자기 생산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는 곧 그동안 한정된 내용을 보이던 고려청자에 서서히 지방적 특색이 가미되는 결과를 가져오며,

왕조가 바뀌자 이 변화의 흐름이 가속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는 분명 고려청자의 생산 기반 위에서 출발하여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변해 갔다.

사실 분청사기의 이름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기술은 근본적으로 청자와 동일하다.

 

회화작품에서 보는 분청사기의 기법과 미감

 

분청사기를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분청사기가 참 현대적이란 말을 한다.

좀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들이

분청사기의 질감이나 표현 방식, 문양 형태, 전체 분위기 등과 상당히 비슷하다면서

매우 흥미롭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작가가 분청사기를 의식하고 그런 유형의 작업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타난 결과가 서로 닮았다고 말하며 우리도 충분히 수긍해 왔다.

 

분청사기를 한국미의 원형질 같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500년 이상 우리 민족문화의 심층에 잠재되어 오던 분청사기의 미감이

20세기에 들어 조선왕조의 두꺼운 지각을 뚫고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찌 보면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태생적인 이유로

현대에 와서 이런 작업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생각이지만,

이런 실험적 시도가 한국미의 정체성 탐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분방한 즐거움이 빚은 파격의 미학

 

분청사기에는 일종의 소박한 파격의 미학이 있다.

우리 청자와 백자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들과 비교해 보아도,

아무리 일탈된 모습을 띤다 하더라도 분청사기에는 특유의 소박함이 흐른다.

고급 자기에서 보이는 일정한 양식미나 개인적 욕구에서 나온 작위적인 파격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별다른 욕심 없이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자기 장인으로서 학습된 경계를 여유 있게 넘어서서

집념이나 속박보다는 분방한 즐거움으로 만든 작품이 많이 보인다.

물론 왕실이나 관아에 공납하는 것들에는

거기에 맞는 일정한 틀이 존재하여 상당한 격조를 보이는 작품들도 있지만,

거기에도 어쩔 수 없는 소박함과 자유로운 정신에서 오는 별격의 장식미가 있다.

굳이 비유해서 말하자면 분청사기에도 차가운 추상과 뜨거운 추상이 있다는 말이다.

 

수없이 반복해 찍어 놓은 점들의 모임으로만 이루어진 정밀한 인화분청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백토를 짙게 바르고 그 위에 대담하고 활달하게 긋고 파내 분방함이 넘치는

조화분청, 박지분청의 세계도 있다.

또한 귀얄에 백토를 묻혀 덤덤하게 분칠하듯 쓱쓱 그어 놓은 채로 둔 귀얄분청에는

잔물결이 일렁거리는 잔잔한 흥취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호방한 물살을 만들어 눈맛을 시원스럽게 하기도 한다.

 

까칠한 백색 표면 위에 짙은 흑갈색조의 주저없는 붓맛이 일품인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에도

제대로 모양을 낸 참한 모습의 것도 있고 광풍 같은 격정적인 붓놀림도 있다.

상감분청에도 차분하게 베풀어진 고전적 문양이 있는 반면,

고려청자의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같은 전통적 문양을 완전 해체하여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삼차원의 세계를 무너뜨려 평면화시킨

놀라운 변형을 보이는 문양들도 나타난다.

 

이처럼 분청사기에는 지역적인 다양함과 장인들 개개인의 다양함까지 녹아 있어

보는 사람에게 망외(望外)의 즐거움을 듬뿍 안겨 준다.

그리고 이런 다양함 때문에 분청사기를 한국미의 원형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粉靑沙器 彫花 魚文 扁甁)

15세기, 높이 23.8, 입지름 5.5, 밑지름 10.7cm, 리움미술관 

 

하부로 갈수록 펑퍼짐하게 벌어진 형태로 안정감이 있고 듬직한 인상을 준다.

몸체 중앙에 조화선으로 표현된 수면을 향해 온몸을 뒤집어 물살을 헤치고 있는 물고기는

정형을 탈피한 놀라운 착상이다.

푸른빛이 서린 분청유를 시유한 것으로,

잔잔한 빙렬이 있고 굽에는 모래에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 분청사기철화모란문장군(粉靑沙器 鐵畵 牡丹文 獐本)

15~16세기, 높이 21.7, 입지름 5.2, 밑지름 11.6×7.0, 길이 31.2cm, 리움미술관 

한쪽 마구리를 제외하고는 주둥이에서 굽까지 전면에 귀얄로 백토를 다소 두껍게 칠했다.

양쪽 마구리 주변에 각각 두 줄의 수직 조화선을 그어 문양대를 나누고,

검은색의 철안료를 사용하여 당초덩굴을 부드럽고 힘찬 곡선으로 그려 넣었다.

중앙의 넓은 면에는 활짝 핀 모란꽃 한 송이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무성하게 핀 잎을 그려 넣어

자유롭고 호방한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분청사기박지모란문병(粉靑沙器 剝地 牡丹文 甁)

높이 35.0, 입지름 8.6, 밑지름 10.7cm, 리움미술관

병의 전면에 귀얄로 백토를 두껍게 바르고 조화기법을 사용하여

주문양인 모란꽃의 윤곽을 그린 다음, 배경을 박지기법(剝地技法)으로 긁어냈는데,

짙은 회색의 지색(地色)과 하얀 백토색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당당한 형태에 시원스럽게 장식된 문양이 어우러져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다.

 

△ 분청사기상감시문매병(粉靑沙器 象嵌 詩文 梅甁)

15세기, 높이 28.0, 입지름 4.3, 밑지름 11.5cm, 리움미술관

시와 위패 모양이 상감되어 있는 특이한 매병으로

몸체 중앙에 시의 제목과 내용을 함께 적어 놓았다.

위패장식 오른쪽에 좌우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사이 세 곳에

'장진주(將進酒)'라는 제목을 흑상감했고, 그 내용은 왼쪽 위패장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 분청사기상감연화학문병 (粉靑沙器 象嵌 蓮花鶴文 甁)

15세기, 높이 29.5, 입지름 7.5, 밑지름 10.0cm, 리움미술관

 

검은색과 흰색을 적절히 혼용한 선상감과 면상감으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와 활짝 핀 연꽃, 목을 길게 늘인 채 무리지어 있는 학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 장식했다.

연꽃과 나무, 학의 모습이 무척 자유로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 분청사기귀얄문편병(粉靑沙器 귀얄 文 扁甁)

15~16세기, 높이 22.0, 입지름 4.5, 밑지름 10.0cm, 리움미술관

귀얄문의 문양효과를 잘 살린 편병이다.

원반을 맞붙인 몸체에 큰 굽다리가 달린 대담한 조형으로

짙은 회색 지면 위에 역동감 넘치는 백토분장이 호쾌하다.

 

△ 분청사기철화초화문호(粉靑沙器 鐵畵 草花文 壺)

15~16세기, 높이 25.7, 입지름 9.1, 밑지름 8.2cm, 리움미술관

투박하고 묵직한 형태의 항아리에 귀얄로 칠해진 백토가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초화(草花)가 굵직하고 시원스럽게 그려져 있다.

주둥이에서 바닥까지 귀얄의 붓자국이 선명해 속도감과 거친 질감이 잘 나타나 있고,

어깨의 배경면에는 안료를 모두 칠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 <문화와 나>, 김재열(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