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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올덴버그 - 건물 꼭대기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Gijuzzang Dream 2011. 6. 30. 22:32

 

 

 

 

 

 

 클래스 올덴버그 - 건물 꼭대기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건물 꼭대기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클래스 올덴버그 <빨래집게> 1976, 코르텐 철판, 스테인레스 받침, 높이 13.7M, 센터 스퀘어, 필라델피아, 미국웬 빨래집게?

현대식 고층빌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빨래집게가 서 있네요.

이것은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시의 시청 건물 앞에 있는 조각 작품입니다. 그런데 빨래집게 모양이 요즘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집게가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구식 나무 빨래집게로군요.

마치 걸리버(Gulliver)가 대인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처럼 보이는 이 조각은 놀랍게도 미국의 팝아트(Pop Art)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가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공공조각 작품이랍니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빨래집게 모양으로 조각을 만들었을까요? 크기도 작고 옷을 널 때만 사용하는 실용적인 물건이라서 미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던 평범한 빨래집게라 할지라도 커다랗게 확대하게 되면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랍니다.

 

우선 올덴버그는 두 개의 똑같은 모양의 집게 다리를 하나로 합쳐 만든 빨래집게가 마치 두 사람이 서로 껴안은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모양이 ‘형제애의 도시’란 별칭을 가진 필라델피아시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두 집게 다리를 연결해주는 용수철의 모양이 마치 숫자 7과 6을 합친 것처럼 보여서 미국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인 1976년을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해요.

 

 

클래스 올덴버그와 쿠제 반 브뤼겐 <숟가락다리와 체리Spoonbridge and Cherry>, 1988, 스테인레스 스틸, 알루미늄, 폴리우레탄 도색, 9×15.7×4.1M, 미네아폴리스 조각공원, 워커 아트 센터, 미네아폴리스, 미국올덴버그는 대량생산된 상품이나 대중적 이미지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팝아트 미술가로서, 그는 특별히 작고 보잘것없는 일상용품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방법으로 세계의 여러 도시를 위한 기념비적인 조각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물론 선택된 물건들은 아무렇게나 고른 것이 아니라 그 조각 작품이 세워질 도시나 장소의 특징이나 특별한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이라고 합니다.

 

미국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 시의 한 공원에 설치된 조각 작품인 <숟가락다리와 체리>를 보세요. 손잡이 부분이 마치 다리처럼 사람이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큰 숟가락 위에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빨간 꼭지 체리가 얹혀 있습니다.

 

올덴버그는 이 조각에서 스테인레스 스틸을 연마하여 반짝이는 광택과 날렵한 곡선미를 살린 숟가락을 통해 미네아폴리스 시민들이 즐기는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의 느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조각에 빨간 체리를 얹는 아이디어를 더한 사람은 1977년부터 올덴버그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아내 쿠제 반 브뤼겐(Coosje van Bruggen)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직으로 서 있는 다른 조각들에 비해 누워있는 숟가락 모양이 좀 심심해 보여서 빨간 체리를 얹어보았다고 하네요. 반 브뤼겐은 대부분 단순한 형태의 일상 사물 모양으로 만들어서 자칫 단조롭거나 밋밋하게 보일 수 있었던 올덴버그의 금속 조각에 유머와 친근감을 더해주었죠. 이로써 올덴버그의 조각들은 삭막한 도시를 더 보기 좋고 즐겁게 만들어 주었죠.

 

 

클래스 올덴버그와 쿠제 반 브뤼겐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콘 Dropped Cone>, 2001, 스테인레스, 아연도금 강철, 플라스틱, 발사나무, 폴리에스터 젤코팅, 높이 12.1×지름5.8M, 뉴마켓 광장, 쾰른, 독일올덴버그와 반 브뤼겐은 독일 쾰른(Cologne) 시의 한 쇼핑몰을 위해 만든 조각에서도 도시의 특징과 유머 감각을 조화시켰어요. 마치 거인이 들고 지나가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우연히 한 건물 모서리에 뚝 떨어뜨리고 가버리고 만 듯 거대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콘이 옥상에 비스듬히 거꾸로 서 있네요. 더구나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부분이 녹아 흐르며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아서 더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군요.

 

사실 올덴버그는 붐비는 뉴마켓 시장 앞에 조각을 세울 공간이 마땅하지 않자 그 대안을 찾던 중 쾰른 시의 명물인 중세 대성당의 뾰족탑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이아몬드 무늬가 새겨진 아이스크림콘을 크게 확대하면 시민들에게 익숙한 뾰족탑 모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는 또한 일부러 아이스크림이 곧 녹아서 사라질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아이스크림콘을 뒤집어서 쇼핑몰 건물 위에 설치했어요. 이를 통해 소모적인 쇼핑에 중독된 현대인의 소비문화가 덧없다는 것을 재치있게 비틀었죠.

덕분에 쾰른시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이 조각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클래스 올덴버그. 쿠제 반 브뤼겐 <스프링 Spring>, 2006, 21.3×5.5M, 청계천, 서울올덴버그와 반 브뤼겐은 우리나라 서울에도 기념비적 조각을 남겼는데요. 청계천 입구에 서 있는 <스프링>이 그 주인공이죠. 이 조각은 반 브뤼겐이 청계천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다슬기의 모양을 확대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다슬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조각에 사용된 빨강색과 파랑색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의 태극 문양과 같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색으로, 두 색의 조화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커다란 조각 입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조각 내부를 흐르는 청계천의 맑은 샘물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처럼 올덴버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고 보잘것없는 사물을 도시를 대표하는 위대한 미술작품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덕분에 늘 엄숙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조각 예술이 더 쉽고 재미있고 친근한 미술작품으로 우리의 삶 속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하니, 망설이지만 마시고 청계천 나들이로 직접 <스프링>을 만나 보세요.

 

- 김호정,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강사

- 2011.06.29 하이서울뉴스 [예술, 전통의 경계를 넘어서다]